현대 세계관의 이해
구별
모든 인지시스템은 구별을 처리합니다. -루만, 조직과 결정
인지시스템이 구별을 만들어내는 방법은 추상화와 관련이 깊습니다. 우리가 세계를 인지할때 세계 자체를 온전히 1:1매핑하여 인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인지기관의 정보는 감각기관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감각기관으로 입력된 정보(필터링됨)를 통해 인지될 수 밖에 없으며, 이를 사고하기 위해 추상화 작업을 거치게 됩니다.
무지개의 경우가 적절한 예인데, 1. 과거 우리나라에는 동양의 오행설을 기반으로 무지개를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 검은색 휜색을, 2. 미국에서는 빨, 주, 노, 초, 파, 보 의 여섯가지 색을, 3. 이슬람권에서는 빨, 노, 초, 파의 네가지 색을 ==구별==합니다. 즉 우리는 세계에 대한 감각으로부터 언어화하는 과정, 추상화하는 과정을 통해 구별을 만들어내고 이 구별은 세계에 대한 감각의 일부를 상실하게 합니다.
추상화
기본구조를 드러내기 위해 특정 세부사항을 제거하는 기술을 추상화라고 한다.
추상화는 일종의 라벨링으로서 여러 개체에 걸친 공통적 특성을 선택하고 일반화하여 사유를 가능하게 합니다. 즉 많은 개체의 어떤 공통적인 특성에서 출발한 추상성은 역으로 많은 대상이 가진 특수성을 제거하면서 시작하게 됩니다.
수리철학
수학도 마찬가지로 추상화의 학문이기 때문에, 추상화된 개념을 논리적으로 구조적으로 결합하여 탐구하게 되고, 수많은 사고과정을 통해 마법같은 힘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수학자들은 수학적 힘에 매료된 나머지, 수학을 조금 더 완벽한 학문으로 만들려고 많은 시도를 해왔는데요, 그러다 보니 수학이 왜 강력하고 어디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건지 일반화시키려는 시도가 늘 있어왔습니다.
플라톤이 이데아의 경우처럼, 이데아라는 절대진리가 있어서 이 절대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이데아의 그림자인 세계를 탐구하고 연구함으로서 이데아를 인식하기 위한 도구로 수학이 가장 적합하고 이데아에 가깝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수학자와 철학자들이 수학의 절대성을 탐구해갈수록 끊임없이 반박당해왔는데요, 논리는 완전한가라는 물음은 러셀의 역설에 의해 부정당했고, 완전한 형식성1이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이 괴델에의해 부정당하는 역사를 반복하다보니, 수학자들이 꿈꿧던 이데아로서 학문적 권위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현대에 들어 수학이 하는일은 수학적 구조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으로 그 위상이 로컬하게 쪼그라들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인간의 역사에서 사유가능한 세계가 그만큼이나 확장되어왔다는걸 뜻합니다.
다른 학문에 끼친 영향
우리가 어떤 학자가 되어서 새로운 사실이나 개념을 발견해냈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는 이 개념적 도구를 통해 세계의 모든것을 설명하고 싶을겁니다. 세계의 원리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적 도구가 있다면 제왕학으로 불리우게 될지도 모릅니다. 수학자들도 이런 욕망이 있던것같습니다. 수학이 가진 엄청난 힘을 봤을때, 세계를 설명하는 유일한 언어라고 생각해왔다고 생각할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학의 형식이 무한대로 증가하는 현상을 목격하고, 그 무한한 형식을 일반화시킨 수학을 탄생시켜 또다시 묶어내고, 마침내 다양한 수학적 구조를 탐구하는 현대에 이르러, 모든 세계를 아울러 설명할 수 있을것이라는 욕심을 내려놓게 됩니다. 우리가 해석가능한 세계는 오직 밝혀진 수학적 구조와 동형적인 세계만을 이해 가능한것과 다름이 아니었습니다. 이같은 생각은 수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모든 개념은 추상화에서 출발할수밖에 없으며, 구별을 만들어내고, 인지된 세계정보의 일부를 탈락시키는 과정을 통해, 쪼그라든 세계를 다루지만 여전히 세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개념은 때때로 운이 좋아 어떤 구조체계를 가질 수 있지만, 여전히 설명 가능한 바운더리(쪼그라든 세계) 외부에 대해서는 무능력할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운더리의 외부의 영역이 얼마나 넓은지도 측정할 수 없으며, 오직 확실한것은 바운더리 내부에 포획된 대상에 대해 잘 설명하거나 내부 현상에 대해 예측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어떤 학문이 이 바운더리를 넓혀가는 과정은 수학적힘과 같이 추상화된 사실을 논리적으로 잘 연결하여 새로운 명제를 만들어내는것이거나, 태초에 발생한 추상화로부터 잃어버린 특수성을 복잡한 조건을 통해 포획하여 체계 내부로 편입시키는일을 하는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태초에 잃어버린 세계를 어떻게 다시 가져올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애초에 개념이 세계를 축소시켜냈다면, 같은 세계를 해석하는 여러가지 개념을 융합시킬 수 있지 않을까요?
수학에서도 구조적 융합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구조 자체를 수학적 대상으로 삼아 관계를 연구할 때 더 일반화된 탐구가 가능하면서 동시에 이 구조에 없던 사고방식을 다른 구조로부터 영입해올 수 있게 됩니다.
들뢰즈의 리좀, 데리다의 해체, 지젝의 사이 등 현대 철학자들도 이런 방법론에 있어 학문과 학문을 넘나들며 개념과 개념의 융합에서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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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에서 구조로 전환되는 계기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 의해 일어났습니다. 힐베르트는 힐베르트 프로그램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의 수학자들에게 완전성과 무모순성을 가진 형식체계를 만들어냄으로서 수학적위상을 이데아수준으로 올리고 싶었지만, 괴델에 의해 어떤 형식체계가 만들어지던간에 그 형식성은 반드시 구멍이 존재한다는게 증명되었고, 형식은 그것이 합리적이기 위한 로컬한 바운더리를 가지게 됨이 입증되었습니다. 때문에 완전한 형식을 발견할 수 없으니, 탐구할 수 있는 모든 구조2를 탐구해나가자는 입장으로 수학이 발달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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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는 단순한 연결부터 지식체계 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