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화의 외곽, 그리고 생성
기본구조를 드러내기 위해 특정 세부사항을 제거하는 기술을 추상화라고 한다.
추상화는 일종의 라벨링으로서 여러 개체에 걸친 공통적 특성을 일반화하여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즉 많은 개체의 어떤 공통적인 특성에서 출발한 추상성은 역으로 많은 대상에게 적용가능하여 유용성이 증대된다.
개별적 존재에서 추상을 떼어내어 보다 다양한 개별적 존재와의 관계를 연구, 한 분야를 논리적으로 연결하면 할수록 추상적 특성들이 응집되고, 어떠한 체계를 이루게된다. 체계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지만 다양한 체계의 형식마저 추상화했을때, 잘 응집된 하이라키 구조를 만나게 된다. 하이라키는 각 계층에 의미가 부여된 트리구조를 말한다.
추상화라는 나무의 씨앗은 더 많은 개체에 뿌리내리며 더 튼튼한 줄기, 혹은 여러가닥의 줄기, 가지라는 분기, 잎이나 꽃이라는 여러 양태의 끝단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며, 수많은 개체를 집어삼키고 포획하여 하나의 체계를 만들어나간다.
충분히 연구되고 성숙한 하이라키는 마치 진리인양 해당 분야의 모든것을 해석 및 예측가능한것처럼 여겨지게 하며, 해당영역의 모든 특수성을 하이라키에 포획하기 위해 복잡성을 증가시키며 애를 쓰지만, 괴델의 불완정성정리처럼 체계의 논리만으로 증명 불가능한 포획불가능한 개체를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포획불가능성, 증명불가능한 맹점의 시작은 추상화의 본질에서 기인한다. 추상화의 설명을 다시 돌아가보자.
기본구조를 드러내기 위해 '특정 세부사항을 제거'하는 기술을 추상화라고 한다.
추상화는 태생부터 세부사항을 제거하면서 시작한다. 이 부분이 명백한 맹점인 셈이다. 우리가 나 자신에 대해 ~엄마, ~사원, ~신자, ~선배 등 나 자신을 대상과 연관지어 라벨링하는 순간부터 온전한 나를 정의하는데 실패하는것과 같은 원리다.
잃어버린 의미를 되찾기 위해, 데리다는 구조물의 해체를 주장했고, 들뢰즈는 이 구조와 저 구조를 넘나드는 새로운 형태의 네트워크 구조 리좀을 얘기했으며, 지젝은 한 구조의 바운더리와 다른구조의 바운더리가 겹치거나 부재한 '사이'를 이야기 했으며, 애플의 스티브잡스 또한 과학과 인문학이 만나는곳에 새로운 가치가 있다고 얘기 했다.
작금의 시대에 사유의 방향은 성숙할대로 성숙한 학문안에서 새로운 사유를 창의적으로 해내기는 어렵다. 새로운 사유를 찾는것보다 해당 분야를 공부해서 이미 갖춰진 개념을 학습하는게 더 빠르다. 해당 분야에서 새로움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분야 내부의 한 최첨단을 선택하고 학습하여 나무의 잎파리를 겨우 만들어내는으로 방식으로 창의성이 발현된다.
하지만 앞서 설명했듯이, 해당 분야의 바운더리의 경계에서 혹은 경계 너머에 정복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개체들을 마주할 수 있다면, 비로소 하이라키의 오만한 권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선을 잉태할 수 있다. 들뢰즈는 이런 사건을 생성이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