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성(미완...)
곡성은 2016년에 개봉한 공포영화입니다. 그 당시 이 영화를 보고 찜찜한 기분에 영화를 다시 관람하고 글을 썼던 기억이 납니다.
곡성은 공포영화입니다. 이 영화에 대해 두번째 리뷰를 쓰면서 그때는 없던 뇌과학 지식들이 오버랩 되면서 공포라는 감정 입장에서 해석해보려고 했습니다.
공포에 대해
먼저 두려움과 공포는 어떤 감정일까요? 분명 한여름에 더위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게 오싹한 기분이 들게하는 공포감정은 사람들을 충분히 얼어붙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뇌과학에서 뇌는 감정 없이 태어난다고 합니다. 뇌는 예측하는 기계로 태어나며 정신적 신체적 사건에 대해 예측하는 기계라고 합니다. 우리의 신체가 인지적 자극을 받을때도 이 현상의 원인에 대해 예측하게 됩니다. 여기서 예측불가능성이 공포와 연결이 됩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시각이 잘 작동하지 않는 장소에 서 있을 때 갑자기 큰 소리가 발생하게 되면, 큰소리의 원인이 무엇인지 예측하게 되고, 예측되어진 바에 따라 내 신체에 대한 안전여부가 인지되지 못할 때 우리 신체는 공포받응을 얻게 된다고 하죠. 이때 우리 뇌는 큰 소리에 대한 신체 내부의 반응 또한 예측하게 된다고 합니다. 신체를 보호하기 위해 심박수를 높이고 혈액 공급속도를 증가시켜 보다 빠르게 반응하도록 신체상태를 만들어냅니다. 이때 몸의 상태를 인지하는데는 세부적인 모든 사항에 대해 인지하기는 힘들지만, 쾌감, 불쾌감, 활성화, 비활성화는 구분해낼 수는 있다고 합니다. 이 평형상태가 깨어질 때 우리는 감정이 움직인다고 느끼게 됩니다.
신체감각의 촉발은 사고를 일으키고, 외부자극에 대한 사고는 신체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여기서 공포반응은 외부자극에 대한 해석이 신체반응에 악영향을 미치고, 이 신체반응에 대한 사유가 촉발되어 위험상황들을 상상하고 이로인해 다시 신체반응이 악화되는 루프에 빠지게 되는것을 공포스럽다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공포의 특성중 하나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공포 상황은 감각정보가 매우 부족하거나 예측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막 복싱을 배운다고 가정해봅시다. 이제 막 복싱을 시작했지만 어느것도 학습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 경력자와 스파링이 시작된다면 도저히 예측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 상황에 대해 익숙하지도 않고 전혀 학습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동작도 제대로 예측해낼 수 가 없는거죠. 그때 공포상황을 회피할 유일한 수단은 공격 거리를 내어주지 않는것입니다. 공격 가능한 사거리 안에 들어가면 언제 어떤방식으로 맞게 될지 전혀 알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10여년간 복싱을 수련했다고 한다면, 적어도 나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과 마주하여 스파링을 할 때, 내가 가능한 공격과 불가능한 공격 동선들을 이해하고 있으며, 상대방이 어떤 움직임이나 모션을 취할때 어디가 위험한지 늘 감각을 동반하여 예측할 수 있게 됩니다. 공격당할것이라는 예측가능성 너머의 빈틈을 만들어내어 상대방을 향해 공격해내는 수많은 경험을 통해 복싱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늘 공포영화는 시청자가 경험했던것으로부터 경험하지 못한 미지를 가져와야만 합니다. 미지에 걸친 감각의 부재와 예측의 과잉이 공포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포영화의 상당수가 비현실적인 판타지를 동반하기도 합니다.
예측 불가능성은 그 자체로 종종 현실을 왜곡하여 인지하게끔 하기도 합니다. 당사자가 느끼는 바는 어떨까요? 현실과 왜곡된 현실을 잘 구분할 수 있을까요? 이미 왜곡되어진 순간부터 좀처럼 구분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철학사에서도 인식론에 관한 다양한 논쟁이 있어왔습니다. 우리가 인지한 세계는 세계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인식한 단편, 가상에 불과하다라는 입장이 그것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에 잘 반여되어있죠. 파란약과 빨간약으로 만들어진 가상에서 살아갈지, 실제 세계로 뛰어넘어갈지. 감정 자체가 뇌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던게 아니다보니, 감정은 문화권마다 전혀 다르게 나타나기도 합니다. 한 문화권 내에서 공유된 감정들을 학습함으로서 우리에게 감정은 실제처럼 와닿게 됩니다. 실제로 에스키모인들은 분노가 부재하고, 태평양 타이티섬의 사람들에게 슬픔이 부재하다고 합니다. 감정은 말과 표현 개념과 의미로 연결되고, 의미가 부재할때 감정은 자라날 겨를이 없다는거죠.
감각하기 힘든데 공포상황이 예측될때, 그리고 그 경험이 반복될 때, 공포감정은 점점 커지고 실재가 됩니다. 공포의 의미는 어디서 출발할까요? 확신할 수 없는 미지의 감각을 예측할 때, 의심할 때, 의심의 실체를 마주하고 이 의심을 공유받으며, 집단적으로 실체화 될 때, 그것이 가상이든 현실이든 실재화 되는게 아닐까요? 이 영화 곡성에서도 공포와 의심 집단적 확신이 한되 어울어져 관객까지도 의심의 실재 악마와 마주하게 됩니다.
영화
이 영화 곡성에서도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면서 공포의 본질에 대해 접근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영화에서는 여러가지 사건들이 나열되고 등장되지만 어느 사건 하나조차 논리적 연결성이 명확하지 않은 모호함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되어집니다. 그 빈틈에서 관객의 마음속에 파문을 일으키며 공포를 유발하게 됩니다.
이 영화는 좀비와 질병 귀신 종교등을 넘나들면서 우리가 아는 현실을 비현실과 연결시킵니다. 그리고 영화의 종반부까지 와서도 각 사건들의 인과관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끝끝내 미궁속에 빠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감독이 만들어낸 새로운 공포를 자극하여 관객들의 의심해오던 바를 실체화하여 남아있게 만들어냅니다.
영화에 대해 7년이 지난 지금은 더이상 회자되지도 않고 나름대로 대중의 호응을 받은 해석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가장 인기있던 해석은 독버섯 해석이었죠. 영화에서는 불가사의한 사람들에 죽음에 대해 그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고 끝맺음 지었습니다. 저는 몇가지 키워드를 중심적으로 해석해봤습니다.
영화의 이런 문구로 시작합니다.
그들은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혀서 유령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당황하느냐?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을 품느냐? 내 손과 내 발을 보아라 바로 나다 나를 만져 보아라. 너희가 보다시피, 나는 살과 뼈가 있다."
그리고 중간에 신부님이 이런 대사를 보여줍니다.
그 사람들 시각으로 보자면 귀신은 죽은 사람의 영혼 아니오? 근데 그 사람은 살았잔소 지도 몇번을 그 사람에 관한 소문을 들었는디 유명한 대학교수란 소리도 있고 무시무시한 소문들도 있소 스님이란 소문도 있소 그런디 그냥 그것은 소문 아니오 소문 어찌 그걸 믿고
신부님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계속 확신을 하시네요 직접 보셧소? 직접 보도 않고 어떻게 확신을 하십니까? 병원에 돌아가서 의사를 믿고 하느님께 맏기세요 교회에서 해드릴 얘기는 없습니다.
1. 주요 등장인물
종구(곽도언) 효진(종구딸) 종구 부인 종구 장모
일광(황정민) 외지인(쿠니무라준) 무명(천우희) 양이삼(부제) 동료경찰(양이삼 삼촌) ...
2. 줄거리
영화는 다음 문구로 시작합니다.
곡성은
2. 공포란 무엇인가?
일본인 아저씨가 낚시 미끼를 찌에 다는 장면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과 곽도언이 식사하는 장면 그리고 딸이 나타나서 누가 죽었는지 묻는다
사건 현장에 가니 피부가 심상치 않고 눈에 빛을 잃었다.
두번째 현장에 가니 주술의식을 행한듯한 흔적
산에서 굴러떨어진 사람은 무심코 생 고기를 먹고 있는 외지인을 본다
외지인은 눈이 빨개져서 굴러떨어진 사람을 위협
싹다 그 일본 양반이 오고나서 그런거 아뇨
버섯 성분이 잔뜩 검출되었다
공포란 무엇일까?
사람의 뇌는 예측하는 기계다. 이 예측하는 기계가 온전히 동작하지 않을때, 신체의 부정적 반응과 더불어 두려움이 작동한다. 낯선 존재와 해석되지 않는 기호와 두려움은 사유를 유발시킨다.
지식이란 무엇인가? 입증 가능한 참된 믿음